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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은 사람을 정해진 칸 안에 가두려 합니다. 가수면 가수, 배우면 배우. 그 칸을 벗어나는 순간 조롱이 시작되죠. 가수 솔비로 알려진 권지안이 붓을 들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딱 그랬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이야기를 보면서 오히려 이런 질문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상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상처를 작품으로 만들 때, 그게 진짜 예술이 아닐까요?

상처승화, 아픔이 어떻게 작품이 되는가

권지안이 그림을 시작한 계기는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가짜 영상 유포, 끝없는 악플, 가족의 입원과 도난 사건이 겹치던 시기, 심리치료사의 권유로 붓을 처음 잡았습니다. 아트테라피(Art Therapy)란 미술 활동을 통해 심리적 억압이나 트라우마를 언어 대신 이미지로 표현하고 치유하는 심리치료 기법입니다. 말로 꺼내기 어려운 감정을 선과 색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특히 언어화가 힘든 깊은 상처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멈칫했던 건 그다음 장면 때문입니다. 첫 번째 그림에 사방이 벽처럼 느껴지는 감정을 담았다고 했을 때, 그 설명이 너무 직관적으로 와닿았습니다. 저도 어떤 시기에는 사방이 막혀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저는 그냥 버티는 쪽을 택했는데, 그는 그림으로 표현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 선택의 차이가 결국 이후의 모든 것을 바꿔놓은 것 같습니다.

미술 선생님이 "틀린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는 말도 인상 깊었습니다. 승화(Sublimation)란 정신분석학적 개념으로, 고통스러운 감정이나 충동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창조적 활동으로 전환하는 심리 기제를 뜻합니다. 프로이트가 처음 제시한 개념이지만, 예술가들의 창작 동기를 설명할 때 여전히 자주 인용됩니다. 권지안의 경우가 그 교과서적인 사례처럼 보입니다. 고통이 그냥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타인과 나눌 수 있는 언어가 된 것이니까요.

2012년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엔터총'이라는 작품은 댓글을 쏘는 총에 빗댄 설치 작품입니다. 사이버폭력(Cyber Violence)이란 디지털 공간에서 특정 개인을 향해 가해지는 언어적·심리적 공격 행위로, 익명성 뒤에 숨기 쉬운 구조 때문에 피해 강도가 오프라인보다 오히려 클 수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자신을 향한 폭력을 고발하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심리적 전환이 이루어진 상태라는 걸 의미합니다. 저는 솔직히 그 용기가 쉽게 나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트테라피, 예술이 치유가 되는 조건

예술이 치유가 된다는 말, 혹시 너무 막연하게 느껴지지 않으셨나요? 저도 한때는 그랬습니다. 그냥 그림 그린다고 상처가 낫냐고요. 그런데 권지안의 사례를 보면서 그 시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핵심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외부 대상에 투사(Projection)하는 과정 자체에 있다는 겁니다. 투사란 내면의 감정이나 갈등을 외부의 사물이나 타인에게 옮겨 바라보는 심리 현상으로, 이 과정에서 감정을 객관화하고 거리를 두는 효과가 생깁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만든 '허밍(Humming)' 연작이 그 좋은 예입니다. 추모곡의 허밍 소리를 기억하며 글자처럼 흐르는 선을 그렸다고 했는데, 그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허밍이라는 소리를 선으로 번역한다는 발상 자체가 감각의 교차, 즉 공감각(Synesthesia)적 표현에 가깝습니다. 공감각이란 하나의 감각 자극이 다른 감각 영역에서도 동시에 반응을 일으키는 현상으로, 일부 예술가들이 이를 의도적으로 창작에 활용합니다.

권지안의 작업이 개인적 치유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애플' 연작은 "사과는 그릴 줄 아느냐"는 조롱 섞인 댓글에서 출발했습니다. 욕설이 사과(Apple)로 변해가는 과정을 시각화한 이 작품은 사이버폭력 피해자들에게 직접 위로를 건네는 메시지가 됐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방식은 단순한 자기표현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만들어 냅니다. 누군가의 상처가 다른 누군가의 위로가 되는 순간, 그게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트테라피의 치유 효과에 대해서는 국내외에서 꾸준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예술치료학회에 따르면(출처: 한국예술치료학회) 미술치료는 언어 표현이 어려운 트라우마나 우울증 환자에게 비언어적 감정 표현의 통로를 제공하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권지안의 사례가 개인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보편적인 공감을 얻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작업 여정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우울증 치료를 위해 심리치료사 권유로 그림 시작
  2. 첫 개인전에서 사이버폭력을 고발하는 '엔터총' 발표
  3. 표절 의혹 논란을 소재로 케이크 연작 제작
  4. 아버지 타계 후 상실의 감정을 선으로 담은 '허밍' 연작 시작
  5. 2021년 바르셀로나 아트페어 대상 수상, 국내 아트페어 전 작품 판매
  6. 조롱에서 출발한 '애플' 연작으로 사이버폭력 피해자에게 위로 전달

자기사랑, 가장 늦게 도착하는 감정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일 수 있다는 걸 느낀 적 있으신가요? 권지안은 방송에서 "오랫동안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들었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렇게 강한 인상을 주는 작업을 해온 사람이 정작 자기 자신은 돌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어쩌면 그래서 그 작업들이 그토록 절박하게 진짜였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란 어떤 과제를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개인의 신념을 뜻합니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가 제시한 개념으로, 외부의 평가나 시선이 아닌 자신의 내부에서 형성되는 확신입니다. 권지안이 편견과 조롱 속에서도 계속 작업을 이어간 것은, 결국 이 자기효능감이 서서히 쌓여간 과정이 아닐까요. 미술 선생님의 한마디가 그 씨앗이 됐을 수 있고, 첫 개인전이 그것을 키웠을 수도 있습니다.

결혼에 대한 두려움을 공개적으로 털어놓고, 이후 배우 이규한과 결혼을 발표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어 보입니다. 타인의 시선을 작품의 재료로 쓸 만큼 담대해졌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의 선택에는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 그게 인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사이버폭력 피해의 심리적 후유증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장기간 온라인 공격에 노출된 경우 대인관계 신뢰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그의 용기는 작품 속에서만이 아니라 삶 전체에서 발휘되고 있었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끼인 것 같다고 표현했던 그가, 그림을 통해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고 말하는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자기 자리를 스스로 만든다는 것, 저는 그게 자기사랑의 가장 구체적인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솔비(권지안)는 언제부터 그림을 시작했나요?

A. 정확한 시기보다는 계기가 중요합니다. 가짜 영상 유포와 악플, 가족의 입원과 도난 사건이 겹치던 힘든 시기에 심리치료사의 권유로 그림을 시작했습니다. 치유 목적으로 시작한 것이 이후 본격적인 작가 활동으로 이어졌고, 2012년 첫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Q. 아트테라피가 실제로 우울증에 효과가 있나요?

A. 한국예술치료학회를 비롯한 여러 연구 기관에서 미술치료의 심리적 효과를 보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트라우마를 비언어적으로 풀어내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개인차가 있으므로 전문 치료사와의 상담 병행이 권장됩니다.

 

Q. '허밍' 연작은 어떤 작품인가요?

A.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추모곡의 허밍 소리를 기억하며 만든 연작입니다. 소리를 선으로 번역하듯, 흐르는 선으로 상실의 감정을 담아낸 것이 특징입니다. 청각적 기억을 시각적 이미지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공감각적 표현 방식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Q. '애플' 연작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나요?

A. "사과는 그릴 줄 아느냐"는 조롱 섞인 댓글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욕설(욕)이 사과(Apple)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시각화하여, 사이버폭력 피해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자신을 향한 공격을 타인을 위한 언어로 변환했다는 점에서 승화의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Q. 바르셀로나 아트페어 수상 논란은 무엇인가요?

A. 2021년 바르셀로나 아트페어에서 대상을 수상했을 때, 수상의 권위와 선정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국내 아트페어에서 출품작이 모두 판매되는 성과를 거두면서, 시장에서의 반응은 그 논란과 별개로 긍정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권지안의 이야기를 보면서 저는 한 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재능의 여부보다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어쩌면 더 결정적일 수 있다는 것. 상처를 작품으로 만드는 일은 용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랜 시간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남의 시선에 흔들리기 쉬운 시대에, 자신의 언어로 자리를 만들어간 그의 태도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i0kwTGYSMjY